심찬 2019. 9. 19. 13:44


세 분의 선배님들과 한 파트에서 근무했다. 선배님들 모두 업무에 있어 베테랑이고 모두 결혼을 했고 육아 중이셨다. 당시 나는 스물 일곱의 나이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어리숙한 신입이었다. 회사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었다.

선배님들과 티타임을 자주 가졌는데 그 때마다 꼭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분들도 육아가 처음이고 힘들기에 서로 대화 상대가 필요했고 다양한 육아 이야기를 나눴다. 반면 여자 친구도 없던 숫기 없는 총각 신입에게 육아는 저 멀리 있는 관심 밖의 세상이었다. 공감이 쉽진 않았지만 열심히 들었고 노력했다. 선배님들의 육아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해가 되는 듯 하면서도 의구심이 들었다. '힘들어봤자 얼마나 힘들다고 저러실까. 그저 아기인데.'

아이가 밤에 울어서 잠을 설쳤다는 파트장의 말에 나는 호기롭게 솔루션을 제안했다. "귀마개를 사용해보시는 것은 어떠세요?" 나는 진심으로 진지했다. 다음 날 출근을 해야하고 잠을 잘 자야하니 귀마개를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파트장님은 웃어 넘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파트장님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9년이 지나 나도 선배 사원이 되었고 가정을 이뤘다. 3살 딸 아이를 키우며 육아의 세계에서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이제서야 선배님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아직 미혼인 동료들은 육아의 세계를 가늠하기가 힘들다. 마치 넓디 넓은 우주의 몇백광년 떨어진 새로운 행성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느낌이랄까. 직접 경험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이야기만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이다. 내가 신입이었을 때 선배님들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비로소 깨달았다.

정작 상대가 내 처지를 이해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저 힘들었다고 대화 상대에게 푸념하는 것이기에 말하는 자체로 스트레스가 풀리고 위안이 된다. 상대는 묵묵히 들어주기만 해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섣부른 위로의 말이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힘들지만 이런 행복감을 다른 곳에서 느낄 수는 없다. 환하게 웃으며 '아빠'를 연신 외치는 딸 아이를 보면 나도 모르게 바보 웃음이 새어 나온다. 간밤에 깨서 우는 딸때문에 잠을 잘 못잤지만 그 아이가 있어 오늘도 참 행복하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 새로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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