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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기/일상 에세이

고향 가는 길

by 심찬 2019.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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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한 달전, 아침 일곱시부터 추석 기차표 인터넷 예매 전쟁이 시작된다. 이 예매 전쟁은 대학 시절 수강 신청의 경쟁을 방불케 한다. 미리 시간을 정하고 재빠른 클릭만이 내가 원하는 바를 쟁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각 일곱시에 클릭했지만 대기인원 2만명. 추가로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분명 작년에는 다수의 티켓을 예매할 수 있었으나 올해부터는 가는 방향 한 번, 오는 방향 한 번만 예매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난감했다. 전주로 가는 티켓을 재빠르게 예매했으나 예매 대기 상태로 일주일을 기다려야만 했다. 기다림의 불안감을 이겨내고 일주일 뒤 다행스럽게도 티켓을 쟁취했다. 그래 고생했어. 무사히 기차를 탈 수 있겠어. 이게 뭐라고 참 기쁘다.

 

추석 바로 전 날, 수천명의 경쟁에서 추석 귀경길 기차 티켓 예매에 성공하고 의기양양한 우리 가족은 수원역으로 향한다. 매표소에는 남은 입석 표라도 구하고자 긴 줄이 늘어서 있다. 그들은 왜 미리 표를 구매하지 않았을까. 처음 귀경길이라 몰랐던 것일까. 당일 늦잠을 자서 그런 것일까. 이런 저런 쓸데없는 오지랖 망상을 하다가 김밥집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한다. 넉넉하게 역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여간 여유롭지 않다. 우동과 김밥을 욱여 넣고 기차에 몸을 담기 위해 부랴부랴 기차 시간에 맞춰 플랫폼으로 달려간다. 

 

기차에 탑승해 자리를 찾아가는 길도 녹록치 않다. 꽤 많은 입석 탑승자들 사이를 지나야 한다. 캐리어를 들고 뒤뚱뒤뚱 좁은 자리 사이를 지난다. 수많은 인파를 뒤로 하고 표를 확인해 마침내 자리에 앉는다. 안도의 한숨과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 순간 승리자의 기쁨을 맛보는 동시에 바닥에 쭈그리고 스마트폰을 보는 아이들을 마주한다. 돈이 없어 입석을 타는 것은 아닐 것이며 그저 티켓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패배자다. 입석표나마 구해 무사히 내려가기에 그마저도 감사한 일일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사실 아이들의 패배가 아닌 부모가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아이들은 그저 이 상황이 재미있을 수 있으나 무언가 씁쓸하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도 종종 보인다. 인터넷 예매 전쟁 시대에 적응할 수 없는 할머니는 추석에 왜 기차에 올랐을까.

 

돈이 힘인 세상이며, 정보가 곧 돈이 되는 세상. 물질적으로 풍족해졌지만 정보가 부족하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 정보의 사각지대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정보 빈곤층을 어떻게 구제할 수 있을까. 그저 이 세상의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여기며 어르신을 모른 척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현재 나는 정보 빈곤층이 아니라며 안심할 일이 아니다.시간이 흘러 나 역시도 정보 빈곤층의 대열에 합류할 것임은 부정할 수 없다. 고향으로 가는 길이 참 가시방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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