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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이기/일상 에세이

나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by 심찬 2021. 1. 20.

회사 동기의 소개로 아내를 처음 만났습니다. 

동기 여자친구의 친구인 그녀의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진 속의 그녀는 빛이 났습니다. 나는 동기에게 그녀를 소개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뭔가 남다른 느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서 외로운 마음이 들었던 게 이유입니다. 하지만 소개팅은 언제나 설레입니다. 소개팅을 앞둔 내 마음은 기대로 가득찹니다. 그녀와 연락을 하는 내 마음은 그녀에게 향해 있습니다. 그 시간이 어서 왔으면 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함께합니다. 내면의 무의미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연애 경험이 없는 편은 아닙니다. 스물아홉의 나이에 10명 정도의 여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많다면 많고 그냥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많다고 보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길게는 1년 정도 짧게는 2달 정도 만난 친구도 있습니다. 각기 다른 이유로 만났고 헤어졌습니다. 그 끝은 항상 좋지 않았습니다. 각자가 다른 이유에서지만 서로 대화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싸우고서 헤어지는 방법도 잘 몰랐고 그저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도 헤어졌고 납득할 수 없는 상대의 잘못에 미안하다 말하지 않아도 헤어졌습니다. 그저 헤어질 만남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애 경험이 없는 나에게는 여자의 마음은 항상 어려웠습니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경험들은 나를 성장시키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 혹은 여자의 마음을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하고 대답해야 하는지 대처법 역량이 계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어떤 선물을 좋아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하는지 전혀 몰랐던 나는 이제 꽤 많은 것을 알고있습니다. 생일이 되었을 때 케잌과 꽃을 선물하고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먹는 다는 것은 흔해 보이지만 이만큼 좋은 것도 없습니다. 지금은 정말 당연한 일이지만 예전에 나에게는 여자들에게 왜 꽃을 선물해야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사실 지금 그 마음을 정확히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여자들이 좋아하니 선물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 꽃을 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개팅에서 만나 부담없이 스파게티를 먹습니다. 스파게티라는 말은 고급스럽지 못하네요. 조금 고급스러운 말로 파스타를 먹습니다. 파스타가 더 상위 개념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게 중요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경험적으로 파스타가 더 고급스럽다는 표현이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파스타 맛집에 그녀를 안내합니다. 사실 예전에 먹어봐서 알고 있는겁니다. 연애 경험이 없다면 내가 이 맛있는 파스타 집을 알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블로그에 수 많은 맛집 포스팅들을 온전히 믿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파스타 맛을 모르는 나에게도 정말 맛있는 맛집입니다. 그래서 기억해두었고 소개팅 장소로 선정합니다.

그녀와의 소개팅입니다. 나는 미리 어떤 음식을 먹을지 정해두었고 약속 시간을 정하고 파스타집이 괜찮냐고 물어봐서 장소를 알아봐 뒀다고 합니다. 참 센스있어 보이는 남자로 비춰집니다. 우리는 범계역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모두 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간의 연애 경험은 나를 성장시켰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상대가 좋아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정해주지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정해진 상대를 위한 예의들을 경험을 통해 습득했습니다. 예의가 부족한 나였다면 소개팅 결과가 어떠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수저를 셋팅하고 물을 따라 줍니다. 다행히도 파스타 집에서는 이미 되어 있거나 물을 따라줍니다. 대화도 신경이 쓰입니다. 너무 호구 조사식 질문을 해서는 안됩니다. 실없는 농담을 건네면서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과한 농담은 분위기를 험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상대의 유머 코드가 나와 잘 맞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이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녀와 나의 유머 코드가 잘 맞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정말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사람들은 서로에게 맞추려 노력하고 조금 웃기더라도 웃어주기도 합니다.

 

다행히 그녀와 나의 유머 코드가 비슷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지금 아내에게 물어봤을 때 나는 재미없는 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결혼했냐 물으니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유머 코드가 잘 안맞었나 봅니다. 그런데 왜 그 때 웃어준거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는 뭐랄까. 내 마음을 잘 알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자라는 확신이 첫만남에 들 수는 없습니다. 아직 잘 모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인지 더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색한 소개팅 자리가 나는 참 즐거웠습니다. 그녀가 나에게 맞춰 이야기를 잘 들어줬기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뭔가 잘 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잘 통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저 느낌이기에 저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 확신은 없지만 다음에 또 만나고 싶습니다.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무래도 나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내가 첫 눈에 그녀에게 반했다면 어떠했을지 생각해 봅니다. 소개팅에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녀가 마음에 들어 허둥대고 실수하고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이런 확신 또한 경험입니다. 마음에 들었던 상대가 있었지만 애프터 신청에 실패했습니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다릅니다. 마음의 여유가 있고 그간 쌓아온 경험이 누적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누구를 만나도 애프터 신청을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란 무한한 자신감에 차 있습니다. 이러한 착각은 남자들 모두가 하는 것이니 그냥 너그럽게 봐주세요.

그녀가 또 보고 싶어 다시 만나자고 연락했습니다. 당일 애프터 신청을 하면 좋지 않다고 합니다. 예의상 당일 해야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떤게 정답인지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선 내 마음을 따릅니다. 반대로 내 마음이 시키는대로 했다가는 실패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아무래도 그녀가 마음에 들어 그런가 봅니다. 애프터 신청을 하는 방법도 잘 알아 둬야 합니다. 오늘 즐거웠다는 말은 꼭 합니다. 그리고 연락하겠다고 말합니다. 며칠의 텀을 두기보다 다음 날 아침에 연락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그녀가 나에게 빠져 있다면 어떻게 하든 크게 상관없습니다. 이런 나의 행동들이 다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나는 그녀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유념하며 고심해서 다음 날 아침 다정하게 아침 인사를 건넵니다. 

 

2019.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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